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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장애인 채용과 복지는 어땠을까?

2020-11-10


안녕하세요 드림이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복지는 시대와 상관없이 중요한 정책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의 장애인복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의 복지정책들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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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드림과 함께 알아보자!

조선시대 장애인 채용과 복지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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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 자는 문지키는 데로 돌리며,

심지어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더록 해야한다


홍대용, 「담현서」중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약자로 취급하고 보호시설과 집안에만 있게 하여 복지수당만 지급하는 정책들과는

아주 차별화 되고 선진화된 가치관이 조선시대에는 이미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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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대표적으로 장애인들이 가진 직업으로는

점목(점치는 일), 독경(불경 외우는 일)이 있었고, 악사로 태종대 '명통시(明通寺)'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맹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명통시에서 맹인들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한번씩 모여 경문을 외우며 나라의 안위를 빌었으며 기우제를 지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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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장애인에 해당하는 '독질, 폐질, 잔질자'에게 장정 한명을 주어 봉양하도록 했고,

자립할 수 없는 자에게는 생활비를 나라에서 지원하게 했습니다.

또한 시각장애인 음악가를 위한 관련맹인제도를 만들어 국가적으로 지원하였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명과학(命課學)이라는 관직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뿌리 봅기 위해 차별을 일절 금하는 제도들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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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은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의 능력을 중시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면 대사헌(현재의 장관)이나 정승(현재의 국무총리)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허조(1369 ~ 1439)가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왜소하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척추장애인이었지만,

태조부터 세종까지 4명의 임금을 모시면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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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 뿐만 아니라 숙종때 윤지완은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지만, 정승까지 올랐습니다.

영조때는 청각장애인 이덕수(1577~1645)라는 인물이 도승지를 맡고, 1738년에 청나라로 파견할 외교특사대표로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덕수는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이라, 영조의 명령을 옆사람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전달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영조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매우 신뢰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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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부 대신, 능력 위주로 인재를 채용했던 조선시대 사례처럼

장애인들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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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드림은 장애인 인재를 발굴하여 기업의 장애인 채용과 재택근무, 취업 후 모든 관리를 해결해 드리고 있습니다.